이여발 묘

국경 시장에 규칙을 세운 무관

이여발 묘

국경의 시장에 사람이 끝없이 몰려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 문제를 분명한 규칙으로 풀어낸 무관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그 무관, 이여발의 무덤입니다.

이여발은 조선의 무관입니다. 자는 군실, 시호는 정익, 본관은 한산입니다. 병마절도사를 지낸 의배의 손자입니다. 효종 때 무과에 급제했습니다. 비변랑과 도총사를 거쳤습니다. 숙천 고을의 부사로 있을 때는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기리는 거사비가 세워졌습니다. 거사비는 떠난 수령을 그리워하며 세우는 비석입니다.

그의 이름이 빛난 곳은 북쪽 국경의 회령입니다. 회령의 부사가 되면서 가선대부의 품계에 올랐습니다. 한흥군에 봉해지기도 했습니다. 회령은 북방의 큰 군사 거점이었습니다. 야인들과 서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도 있었습니다. 야인은 국경 너머에 살던 사람들을 이르던 말입니다.

문제는 상인들의 수와 머무는 기간에 따로 한도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 쪽의 피해가 많았습니다. 이여발은 부임하자 규칙을 세웠습니다. 드나드는 상인은 320명 이내로 정했습니다. 머무는 날짜는 20일 이내로 제한했습니다. 그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현종 때에는 병조와 공조의 참판으로 올랐습니다.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나가서는 성을 고쳐 쌓았습니다. 군사들에게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무기를 갖추었습니다. 북방 수비에 힘을 다한 것입니다. 그 뒤 어영대장과 한성부 좌윤, 우윤을 지냈습니다. 숙종 때 지중추부사에 이르러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덤은 소박한 모습입니다. 둘레돌이 없는 봉분 앞에 비석과 상석이 놓여 있습니다. 좌우에는 망주석이 서 있습니다. 그 앞에는 문인석 한 쌍이 마주 서 있습니다. 무덤 앞 조금 아래쪽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신도비는 높은 벼슬을 지낸 이의 행적을 새겨 무덤 길목에 세우는 비석입니다.

신도비 앞에서 무덤 쪽을 올려다보세요. 비석에서 봉분까지 걸어 오르며 국경의 시장을 다스리던 무관의 삶을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방문 팁

  • · 묘역의 석물은 만지거나 기대지 마세요.
  • · 무덤 아래쪽 신도비부터 봉분까지 순서대로 보면 묘역의 짜임이 잘 보입니다.
주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운연동 343-1
지정
시도기념물
© OpenStreetMap contributors

기본 정보 출처: 국가유산청. 도슨트 원고는 펜션라이프가 출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검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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